뉴스/시사(일반)
[스크랩] 한 의사가 삼성에게 하고픈 말
yygg
2008. 12. 1. 10:53
출처 : 사회일반
글쓴이 : 프레시안 원글보기
메모 : 나는 내과를 전공하는 의사다. 고(故) 황유미 씨도, 고(故) 이숙영 씨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응급실에서 혹은 밤 당직을 서면서 몇 번은 고인들의 삶과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외에도 많은 환자들이 처음으로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고, 이식을 받고, 퇴원하거나,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순간들을 함께 해 왔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들의 직업력을 물어본 기억이 없다.
백혈병 환자들은 골수 이식으로 새 생명을 찾는다 하더라도 면역 저하에 따른 이차적 감염의 기회가 많아 불량한 예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시술을 안 아프게 잘 한다며 척수강 내로 항암 치료를 할 때 마다 나를 찾던 한 여성 환자에게도, 밖에 나가 담배를 태우다가 매번 나에게 들켜 멋적게 웃던 중년의 아저씨에게도 무슨 일 하고 사셨는지 물어보지 못한 채 그들을 다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의 의사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백혈병 환자들이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거나 20-30대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백혈병은 유전적 요인에 의해 어려서 걸리는 병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실제 백혈병은 나이에 따라 유병율이 증가하는 병으로 중년이나 노인 환자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후천적인 변이가 발병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의사라면 누구나,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만한 권위 있는 내과학 교과서에 따르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일년에 인구 10만 명 당 3.7명의 유병율이 있으며, 원인은 유전성(hereditary), 방사선(radiation), 화학물질(chemical), 그 외 직업성 노출 (other occupational exposure), 약물 (drug)로 분명히 정의하고 있다. 한 공정에서 같은 작업을 하던 두 명의 노동자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은 의학적 관점에서도 쉽게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