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주장/정치 사회
노무현과 삼성 - 황광우, 윤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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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6. 3. 23:13
노무현 대통령 취임사의 비밀은?
[삼성을 생각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고백의 의미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다양한 논란을 낳고 있다. 주요 언론은 삼성 관련 칼럼 게재를 거부하는가 하면, 심지어 김 변호사의 책 광고까지 거부했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삼성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1등 기업 삼성은 왜 공포의 대상이 됐을까. <프레시안>은 독자들로부터 삼성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삼성을 생각한다> 독후감을 포함해,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이 우리 사회에 남긴 숙제에 관한 내용이라면 누구의 글이건 소개할 계획이다. 독자들이 삼성을 생각하는 글은, 이 메일 주소 mendrami@pressian.com로 보내면 된다. <편집자> |
1998년, 늦깎이 복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 하신 노(老)교수의 연구실에 들러 이런저런 한담을 즐기던 중, 선생님의 책상 위에서 낯선 청첩장 하나를 보았다. 얼른 열어보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세미나 자리에 교수가 초대된 것이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교수님, 교수님마저 이런 데 다니면 어쩌자는 거예요?" 추궁하였다.
내가 목격한 것은 그야말로 한 장의 초대장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냥 별 것 아닌 일로 넘어가도 좋을 일이었건만, 마음이 순결한 노교수님은 서푼어치 비리를 나에게 털어놓고야 말았다. 이 날 목격한, 그 하찮은 청첩장 한 장은 나에게 '거대한 부패의 거미줄'을 드러낸 징표로 다가왔다. 재벌 체제의 해체를 주장하는 이른바 '민중운동 진영'의 교수에게마저 삼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들 그 누구 하나 삼성의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 것인가! 몸이 오싹해졌다.
경제학을 배우다 보니, 삼성경제연구소의 씽크 탱크들의 강의를 자주 접하였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임원을 지내신 모 교수로부터 한국경제론을 수강하였고, 그 분의 동북아물류 중심 국가론을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었다.
"동경과 북경 사이를 통과하는 원을 그어 보라. 희한하게도 이 원의 중심에 서울이 위치하지 않은가? 21세기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경제권은 한,중,일 동북아시아권이 될 것이다. 만일 일본과 한반도를 해저 터널로 잇고, 만일 남북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철로가 열린다면, 명실상부하게 서울이 동북아의 물류의 중심이 아니 되리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로가 길림으로 북경으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르쿠츠크로 이어진다면? 부산에서 김밥 도시락 하나 챙긴 다음 모스크바로 파리로 런던으로 여행하는 시대가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강의를 재미있게 들은 기억이 있다.
광주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그런 광주 시민의 염원으로 대통령이 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는 나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쳤다. 취임사의 절반이, 내가 학교에서 익히 들었던,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론이었다. 이것, 누가 써준 원고냐?
2002년 대선에서 분명히 삼성은 노무현을 반대했다. 어떻게 해서 자신을 반대한 세력의, 그것도 가장 반노동자적인 재벌의 앵무새 노릇을, 그것도 단 한 달만에 자임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신임 대통령은, 우리 서민들이 듣기에 참 답답한 말씀을 많이 하였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대통령이 무슨 애들 반장이람?"
2003년 나는 <레즈를 위하여>를 발간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남한 부르주아지의 국가주의를 폐기하고자 나온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나온 사람이라고 본다. 취임사의 절반이 동북아의 중심국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찬양하는 수사로 덮여 있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전임 대통령들을 옆에 모시고 그들과의 단절이 아닌 그들의 계승을 선언하였다. 대한민국을 선진 강국으로 만들자는 이 사상이 무엇이 나쁘다는 말인가? 하지만 국가주의는 성장주의를 동력으로 삼는다. 그리고 성장주의는 민중의 희생을 전제한다. 성장주의는 경쟁의 심화를 의미하며, 사회의 비인간화, 황폐화를 예고한다."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읽어도 재미가 없다. 왜 이렇게 재미없는 글을 쓴 것이냐? 요는, 문제의 '남한 부르주아지'가 추상적 개념이었던 것이다. 구체성이 없는 단어, 생명이 없는 단어였다. 왜 나는 '삼성의 지배'라고 못박지 못하였던가?
나는 '삼성이 대한민국을 체계적으로 말아 먹고 있음'을 직감했지만, 섣불리 공언할 수 없었다.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이 삼성에 의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입증할 '증거'가 내게 없었다.
2005년, 마침내 비리의 물꼬가 터졌다.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의 X파일을 공개한 것이다. 참 대한민국은 희한한 나라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간첩을 발견하는 즉시, 신고하라, 간첩을 신고하면 거액의 포상금을 준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1996년 충남 부여에서 출현한 무장 공비 김동식은 내가 신고한 간첩이었다. 그런데 준다는 포상금은 오간 데 없고, 이 일로 안기부에 6개월 동안이나 불려 다니는 고초를 겪었다.
노회찬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이 벌여온 뇌물 공여의 테이프에 입각하여 노 의원이 관련 인물을 공개하자, 검찰은 오히려 노 의원을 고소하여 버렸다. 잡으라는 범인은 잡지 않고, 잡으라고 신고한 시민만 못 살게군 애꿎은 사건이었다.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이 나왔다. 달포 동안 살까말까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여 나는 폭로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종의 의무감으로 구입했다. 책장에 꽂아놓고 읽지 않은 것도 한 달이 넘었을 것이다. 어느 날, 신문사들이 이 책의 광고를 거부한다는 소문이 귀에 들렸다. 그제서야 책을 잡았다.
나는 경악했다. 이건희-노무현의 고리가 이 책에 있었다. 노무현을 삼성의 품속으로 유인한 이는 노무현의 부산상고 동문 선배, 이학수였다. 취임사의 비밀은 이것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육성을 들어 보자.
"2002년 대선 당시, 구조본 팀장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회창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반가워했고, 그렇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낙담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나와 이학수 실장이다. 하지만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고, 이학수는 솔직하게 이유를 말했다. 이학수는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과 인간적으로 아주 친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학수를 '학수 선배'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학수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삼성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노무현 정부 정책 가운데 삼성에 불리한 것은 거의 없었다. 대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제안한 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채택한 사례는 아주 흔했다." (147쪽)
나는 이학수가 노무현의 동문 선배라는 것을, 이학수가 삼성 구조본의 실세라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노무현과 이학수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김용철 변호사는 담담하게 술회하였다. 이어 그는 고백하였다.
"당시 이학수는 아침 모임만 하루 두 번씩 가졌다. 이렇게 일년이 지나니, 호남 출신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삼성과 인연을 맺게 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재벌이 주요 인맥을 장악하는 데는 일 년이면 충분했다." (180쪽)
이 대목에서 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념을 다시 떠올렸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이 말은 청와대의 인사들이 전원 삼성의 로비망에 포섭 완료되었음을 고백한 선언이었다.
▲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뉴시스 |
이제 모든 것이 밝혀졌다. 무려 400여 쪽의 지면에 삼성의 비리가 올올이 새겨졌다. 이제 이건희로 인하여, 국민은 "과연 대한민국이 법치 사회인가?"라는 아주 창피한 물음 앞에 머리를 잡아뜯게 되었다. 이건희로 인하여, 로스쿨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골치아픈 논제에 답변을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게 되었다.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는 헌법 11조 2항은 유효한가?"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와 평등"을 사랑한다. 나도 "자유와 평등"을 사랑한다. 이건희로 인하여 우리는 그 "자유와 평등"의 실체에 대해, 혹 이 위대한 문구가 빛좋은 개살구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 나라 맞아?
진정 훌륭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면, 이건희의 탈법만큼은 단죄하고 넘어가야 한다. 10억원의 재산을 상속할 경우 4억원을 상속세로 국고에 귀속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법률이다. 200조가 넘는 매출을 자랑하는 삼성, 그 삼성의 소유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와 이재용이 나라에 바친 세금이 고작 16억 원이었다는 것을, 우리의 어린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우리는 뭐라 해명할 것인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노동조합을 볼 수 없다"는 명언을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은 유훈으로 남겼다 한다. 노동자의 단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노동자를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며 살겠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건희 일가만이 "자유와 안전과 재산"의 자연권을 부여받은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서민들은 밤낮 일만 해야 하는 소이고, 주인에게 알이나 까바치는 양계장 닭이며, 평생 주인에게 충성하다 복날 비명에 가는 똥개라는 얘기다. 정말이지 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세계사가 기록에 남겨두어야 할, 삼성의 야만이요, 한국의 치부이다. 삼성에게, 한국인들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우리들은 군사독재에 항거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제 삼성독재에 항거하며 마지막 인생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나는 상상한다. 오는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 '자유의 여신상'이 삼성의 옷을 입고 나와 이렇게 말하는 거다.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유럽인들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특히 한국인들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혹은 상상한다. 오는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일, 파리의 개선문에서 나폴레옹이 삼성의 옷을 입고 나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성취한 고고학상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 로제타석의 발견이었다면,
이건희가 성취한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혁신은 불법상속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재용 씨에게 한마디 전하고 싶다. "인간은 서로 억압하고 착취하며 살지만, 자연은 인간에게 절대적 평등을 선물합니다. 그 선물은 바로 죽음입니다."
성북동의 길상사를 방문해 보길 권합니다. 길상사는, 시인 백석을 사랑한 고 김영한님이 평생 모은 재산 1000억원을 법정 스님에게 의탁하여 세워진 절이랍니다. 김영한님은 거액을 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내가 모은 재산은 백석 시인이 남긴 시 한 구절의 가치도 없다."
부디 일가의 오류를 성찰하고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다시 태어나길, 호소하는 바입니다.
"노무현의 불행은 삼성에서 비롯됐다"
[삼성을 생각한다] 내가 지켜본 노무현-삼성 관계
나는 2001년 봄 청와대를 그만두고 금강캠프라 불리던 노무현 후보의 대선캠프에 몸을 담았다. 노무현 후보를 모시던 가까운 후배들이 도움을 요청했고, 나도 정치권에 참여한지 오래지 않지만 더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노무현 후보와 일면식도 없지만 그가 정치하면서 보여준 모습에 대한 믿음과 민주당 후보로서 그의 파괴력에 대한 기대도 주요한 동기였다. 전체적으로는 이회창 대세론이, 민주당 내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하던 시절이다.
처음에 정책특보로 시작해, 나중에 캠프의 선임팀장 격인 상황실장을 맡아 일했다. 노무현 후보가 국민참여경선을 거쳐 민주당의 정식 후보가 된 후에는 비서실 정책팀장, 부실장, 선대위 정치개혁운동본부 사무처장 등의 직책을 맡았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그와의 인연이 대선승리와 함께 끝난 것은 적잖이 아쉬웠지만 성취감과 보람으로 위안을 삼았다.
▲ 노무현 눈물의 씨앗은 바로 삼성에서 시작되었다. ⓒ프레시안 |
처음으로 노무현 후보와 삼성과의 관계에 대해 들은 것은 캠프 내부 멤버들의 입을 통해서다. 이학수 삼성 부회장이 노후보와 부산상고 선후배고, 초선 의원시절부터 도움을 받았단다.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것은 국민의 정부시절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동남특위 위원장으로 활약할 당시, 삼성자동차 처리 문제에 나섰을 때였단다. 나는 삼성자동차 처리가 결과적으로 삼성에 유리하게 이루어졌는지 어쩐지 잘 모른다. 어쨌든 청산이외에는 답이 없다던 삼성자동차를 르노에 넘기는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가 비중 있는 역할을 했고, 삼성 쪽 파트너였던 이학수 부회장과 매우 긴밀한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막연하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두 번째 에피소드다. 정확치는 않지만 2002년 초로 기억한다. 당시 참여연대가 '소액주주운동'의 일환으로 삼성주총에 참여해 일전을 벌였다. 주총 사회자가 이학수 부회장이었고, 그의 이사 선임문제가 쟁점이었다. 장하성 교수를 비롯한 참여연대 대표단은 이학수 부회장의 이사 선임을 반대했고, 여러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다음 날 금강캠프에 출근했을 때 노무현 후보의 오른팔이라 일컬어지던 이광재 씨는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 장하성 교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장하성 교수 빨갱이 아니냐,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이학수 부회장의 이사 선임을 왜 반대하는 것이냐?"
나는 그의 발언이 놀랍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 장하성 교수의 소액주주운동은 한국의 재벌구조를 개혁하는 운동으로 개혁 진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빨갱이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액주주운동은 오히려 진보 진영 일부에서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주주자본주의를 강화시키는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삼성을 반대하면, 정확히 말해 삼성 총수의 가신을 반대하면 빨갱이라는 말인데 논리의 비약이 매우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만 말하기로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느낌을 덧붙인다면 이광재 씨가 이학수 부회장을 적극 옹호하는 태도로 보아 그를 매우 존중하고,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삼성과 노무현 캠프의 밀착관계에 대해 더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정식 후보가 된 직후였다. 또 이광재 씨다. 2002년 5월 어느 날 이광재씨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출간한 <국가전략의 대전환>이라는 책을 들고 다니며 소개했다. 당시 후보의 정책팀장이었던 나에게도 소개하면서 노무현 후보의 대선공약에 반영하자고 했다. 나는 특별한 답을 하지 않았지만 속은 퍽 씁쓸했다.
더 압권은 그 얼마 후다. 이광재 씨는 핵심 엘리트 관료 몇 사람의 명단을 거론하면서 "이런 사람들하고 일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다녔다. 다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참여정부 초대 경제팀의 핵심인 김진표, 박봉흠, 최종찬, 윤진식 등의 이름이 들어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광재 씨가 위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의 역량과 정책적 입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또 그런 평가자료를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외부조력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따름이다.
대선이 끝나고 인수위가 구성되었다. 나는 대선 직후 참여정부 권력핵심부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인수위에 참여도 못했다. 한때 노무현 후보의 정책팀장을 맡았고, 노무현 후보에게 많은 전문가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던 내가 인수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나 스스로 놀랐고, 주변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어쨌든 그래서 인수위를 직접 경험하지 못해 자세히 내막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노무현 후보와 연결시켰던 전문가 상당수가 인수위에 참여한 덕에 그들로부터 내부 상황을 귀동냥할 수 있었다. 그들은 깊은 우려 속에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인수위는 2개월의 활동결과를 묶어 국정운영 백서를 작성하고 이를 당선자에게 전달했는데 이와는 별개의 국정운영백서가 후보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성주체는 삼성경제연구소라는 것이었다. 당선자가 인수위가 작성한 것과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것 가운데 어떤 것을 국정운영의 기조로 삼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특정 기업인 삼성 산하 연구소가 별도로 국정운영백서를 작성해서 당선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우려스러운 사실 자체는 남는다.
참여정부 기간 중 잠시 열린우리당의 원내기획실장을 맡은 것을 제외하면 거의 야인으로 지냈으므로 참여정부의 내부 사정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보도를 통해서나마 삼성과 참여정부 핵심들과의 유착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두 가지 사례는 지적할 수 있다.
2004년 원내에 진출한 이광재 의원은 노대통령의 측근 출신 의원 몇 사람을 중심으로 원내에 의정연구회를 결성했다. 의정연구회는 국회에서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 세미나를 개최했다. 당시에도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비판적 말들이 오갔다.
참여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적극 추진한 법 가운데 하나가 '기업도시법'이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전경련으로 기억한다. 당시 자세히 찾아보지 않아서 특히 삼성이 뒤에 있다고 말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기업도시법'은 기업이 특정 지역에 기업도시를 만들 경우 해당지역 주민들의 토지를 수용할 권한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것은 사기업에게 국가의 권한을 대신해 사유재산을 수용할 권한을 주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위헌소지가 다분하다고 보았고,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의 원내기획실장으로 일할 때라 이 법에 대해 의원들과 함께 토론하는 자리에 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이광재 의원도 있었다. 나는 천정배 당시 원내대표에게 위헌소지 등을 들어 '기업도시법' 통과에 신중할 것을 요청했다. 나의 문제제기에 분위기가 잠시 주춤했으나 이광재 의원이 청와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뉴앙스의 말을 하면서 법은 통과시키기로 결정되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주미대사로 임명하고, UN사무총장으로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이다. 물론 왜 그랬을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처음부터 말했듯이 나는 해석하지 않고 사실만 말한다. 해석은 나의 몫도 아니지만 권순욱 씨의 몫도 아니다. 권순욱 씨는 황 작가의 글에 대해 개인의 작은 경험에 의존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확대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누구나 자기의 경험에 기초해 말할 자격이 있다. 사실이 아닌 것에 기초해 말한다면 비판받아야겠지만 권순욱 씨가 아무리 현란한 논리를 동원한다고 해도 황 작가가 경험한 사실은 남는 것이다.
이제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나의 경험이 노무현 대통령과 삼성의 관계의 깊이를 판단하는데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과 유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노무현 대통령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공도 있고 과도 있다. 그의 과를 올바로 평가하고, 왜 그랬는지 원인을 밝히고, 진보개혁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그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봉하마을에 내려간 후 회한 가운데 토로한 여러 말들로부터 우리는 그가 자신의 과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노무현의 매력이다.
지금 수많은 자칭 노무현들이 나타났다. 노무현 후보는 '나는 국민의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계승하겠다'는 말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뢰를 얻었다. 지금 작은 '노무현'들은 어떠한가? 그의 과를 함께 반성하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하는 용기를 가진 자를 찾기 어렵다. 누가 그의 과를 지적이라도 하면 그를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날뛴다. 그들은 노무현이 아니다. 더 이상 노무현을 팔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