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철 인터뷰(출신 미상)
"천안함 사고의 최초 원인은 좌초다"
[인터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전 해군 중위

MBC에서 단독 입수한 군 상황일지에 의하면 사건 발생과 관련 21시 15분으로 명시되어 있고, 해군함대사령관이 작전처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민중의소리
폭발음과 군 보고내용을 토대로 말하자면 이번 사건은 두 번의 사고로 나뉜다. 하나는 밤 9시 22분이고 또 하나는 그 이전(9시 15분으로 추정되는)에 발생한 최초의 사고이다. 밤 9시 22분 당시 지진파가 두 번 감지되었다는 건 언론에도 보도되었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다. 그런데 그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MBC뉴스를 통해 공개된 군 상황일지에는 밤 9시 16분에 방공33진지에서 '폭음소리'가 들렸다고 되어 있다. 멀리서 쿵 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현재 밤 9시 15분에 무슨 일이 났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 무슨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사고를 함장은 대원들에게 감추었던 것이다.
- 그럼 밤 9시 15분경에는 무슨 사고가 있었던 걸까.
지난 달 27일 저녁 <아시아경제>에 실린 사진이 있다. 가족들 중 누군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기자들에게 보여준 건데 해군측이 생존자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는 장면이다.
제목이 '사고지역은 초계함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라고 된 이 사진기사는 '2함대 사령부에서 해군관계자가 생존 선원들에게 브리핑을 받고 나온 실종선원 가족들이 해군이 설명한 당시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당시 작전지도를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해군이 실종자 가족들에게 설명하며 사용한 작전지도에 적혀진 메모. 실종자 가족이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을 '아시아경제'가 보도했다. - 고조 : 03:41 / 16:13 - 해수면이 가장 높아지는 시간 (하루 두 번)/저조 : 09:57 / 22:39 - 해수면이 가장 낮아지는 시간 (하루 두 번)/평균수면 : 6.4m - 평균수면이란 바람, 조석등 외력이 작용하지 않아 수위의 승강이 없을 때의 가상적 해면. 하나의 기준이 되는 평균해면.ⓒ 신상철
작전지도에는 '최초 좌초'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이건 진실이 담긴 사진이다. 3월 27일 18시에 나온 기사다. 사고지역 바닷물의 수심을 알아보려고 자료를 찾다가 이 사진을 봤는데 작전지도에 보면 '고조', '저조' 등이 표시되어 있다. 고조는 바닷물 깊이가 최고치일 때 저조는 그 반대일 경우다. 하루에 두 번 있다. 고조는 오전 3시 41분과 오후 4시 13분, 저조는 오후 4시 9분과 밤 10시다. 사고 난 시간대는 하필 가장 물이 낮을 때다.
'최초 좌초'라고 별표가 그려진 곳이 있는데 이 지점은 평균 수심이 6.4미터 지점이다. 수심이 높으면 8.9미터, 물이 빠지면 3.9미터가 된다. 물이 가장 낮을 때다. 천안함의 흘수(물에 잠기는 부분)는 4.5미터다.
별표가 그려진 일대에 물론 하나뿐이었지만 암초도 있었다. 황해도 예성강에서 뻗은 물줄기가 백령도에 부딪치면서 물길이 갈라지고 모래들이 쌓여 '해안단구'가 형성된다. 최초 사고 난 지역이 여기다. 평소에 다니면서 사고가 한 번도 안났을 수도 있다. 시간이 밤 9시 15분 수심이 최저일 때인데 이쪽으로 가다가 암초 옆도 지났을 거다. 이리 간 건 어찌되었건 분명 항해 과실이다. 바다에서 오래 있지 않은 사람은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 밤 9시 15분경 좌초로 인해 배가 손상되고, 바닥에서 물이 차올랐다는 얘기인가?
침몰된 천안함 사진을 보면 '나는 좌초됐다'라고 적혀있는 것만 같다. 해안 단구 쪽에서 사고가 났을 때 가만히 있었으면 살 수 있었다. 배가 해안단구 모래 바닥 위에 얹혀 있는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빨리 구조했으면 다 살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 상황에서 다시 배를 뺐다는 것이다.
이건 통신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함장은 당시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을 것이고 상황판단을 한 지휘부에서는 상황을 듣고 빨리 대청도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해안단구 자체가 모래다. 백령도 일대 바다의 모래층은 매우 단단하다. 해안단구 일대에 암초를 끼고 있었던 것인데 모래 바닥이 단단했더라도 1,200톤급 배가 밀고 들어갔다면 모래가 파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옆에서 부터 접촉면은 다 긁어 먹는다. 양옆은 물론 아래쪽에 약 세군데 정도 찢어진 것 같다. 함미가 인양될 때 (배 안에 가득차 있던) 물줄기가 쏟아지던 곳이 세 군데 있었는데 최초의 좌초에서 찢어진 곳이라고 본다.

천안함 함미가 바지선으로 탑재되기 전 위치 조정 중이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그렇게 쉽게 배가 찢어질 수 있나
배의 철판두께는 매우 얇다. 아래쪽은 18~20 mm, 옆은 14~18mm정도다. 상갑판은 50mm 정도의 두께다. 그리고 가운데에 '용골'이라는 게 있어 이 용골과 상갑판이 종축의 강도를 유지하는데 이 상갑판을 살펴보면 어뢰에 대한 답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찢어진 게 세 군데인데 이건 가려졌지만 옆은 차마 가리지 못했다. 함미를 크레인으로 바지선에 올릴 때 보면 물이 줄줄 샌다. 그곳이 구멍 난 곳이다. 이 문제는 전문가들도 많이 지적한 부분이다.
배를 들고 있으면 물이 다 빠지는데 왜 양수기로 빼느냐는 의혹들도 제기됐었는데 (군이) 증거를 없애려 했다. 배에서 물이 새면 매트리스를 갖고 찢어진 데를 덮어버린다. 과거 해군 훈련을 할 때를 생각해보면 훈련의 상당 부분이 물새는 걸 막는 거다. 함장은 일단 혼자 막아 보겠다고 했을 거다. 다른 부분에는 이상이 없으니 빨리 기동한다고 보고를 했고, 빨리 대청도로 복귀하기로 했을 것이다. 이때는 엔진도 멀쩡했을 테고 스크루를 돌리면 빠져나올 수 있다. 여기서 1차 사고, 즉 '좌초'된 것이다.
정황상 밤 9시 15분에 사고를 당해 보고를 하고 다시 배를 빼는데 최소 2분은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 밤 9시 22분까지면 불과 5~7분이다. 매트리스 가져올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좌초된 상태로 있었으면 바닥과 닿아 있어 물이 덜 들어왔을 텐데 체중이 1200톤인 배가 바닥이 찢겨진 채 이동을 하니 그때 물이 다 들어왔을 것이라고 본다.
함미 쪽에 있던 해군 46명 누구도 빠져 나올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물이 급히 쏟아지지 않았더라면 옆의 유리창을 쇠뭉치로 깨고 나오거나 오히려 물이 차길 기다렸다가 수압이 같을 때 밀고 나오면 된다. 그러나 한 사람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동하면서 엄청난 물이 밀려 들어왔을 것이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함장은 뒤쪽이 위험하니 비상배치를 시키거나 전투배치로 모두 갑판위에 올렸어야 했다. 그런데 벨도 안 울렸다. 그러니 면도를 하다 희생된 장병도 있는 것이다.
- 외부 폭발, 어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어뢰 실험 사진을 보면 엄청난 물보라가 생긴다. 견시병이 있었으면 '펑'하면서 물보라가 뜰 때 뒤늦게 돌아봐도 충분히 보고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물보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금세 가라앉았다는 건 이미 물이 가득 찼다는 의미다.
- 그렇다면 밤 9시 22분의 폭음은 무엇이고 무슨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나?
대청도, 백령도 인근은 상당히 해로가 복잡하다. 이 지역의 협수로를 통과할 수 있을만한 급의 배가, 적어도 1대가 현장을 지났을 것으로 보인다. 야간에 운항하는 배는 가운데 노랑색, 양옆에 빨강, 녹색 불빛을 켜고 상대편에서 오는 배를 식별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런데 배라는 것이 자동차처럼 곧바로 방향을 틀수가 없다. 물이 차오는 천안함이 고속으로 대청도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자칫 충돌이 생긴다면 그 주변에서 몇 대가 엉키는 건 시간문제다.
이곳에서 두 배가 충돌했을 것으로 본다. 우현 쪽으로 넘어갔다면 좌현 쪽에서 충격이 왔다는 것이다. 외부 피격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럴 경우 차라리 부서지지, 넘어지진 않는다. 누군가 칼로 힘껏 사람을 찌르면 칼이 들어가지, 사람이 쉽게 쓰러지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배를 옆으로 90도 넘긴 힘이 무엇일까. 어지간한 배가 충돌한 게 아니면 푹 들어가지 90도로 꺾이진 않는다. 들이박는 순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고속으로 이동하던 배가 좌측에서 충격을 받았다면 우측이 좌측보다 무게가 많아지면서 옆으로 기우는 건 당연하다. 찢어진 게 더 찢어지고 이런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배가 옆으로 90도 넘어갈 정도로 찢어졌다. 천안함 좌상판이 올라간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이건 어뢰가 부순 흔적이 아니다. 육지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바다, 배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이건 배가 완전히 뒤집어지면서 맨 마지막에 찢어지며 떨어져 나간 부분이다.
쿵 소리가 두번 났다고 했는데 첫 번째 소리는 충돌할 때 난 소리이고 두 번째 소리는 철판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다. 철판이 떨어져나가는 소리 들었다는 전문가가 있었는데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지진파를 분석한 결과도 폭발에 의한 파동이 아니라고 했다. 폭발이 아니라는 증거는 얼마나 많나. 최초에 발견된 시신들을 보면 몸에 상처 하나 없다. 폭발을 했다면 TOD 적외선 카메라엔 왜 안 잡히나.
- 밤 9시 22분 사고 원인이 충돌이라는 주장은 다소 당혹스럽다. 그런 물체가 있을 수 있나?
정답은 군 당국 특히 해군은 보유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밤 9시 이후 천안함의 위치와 경로 그리고 속도에 대한 정보와 그 경로 상에 암초가 존재하는지 등을 따져보면 금세 밝혀질 수 있는 일이다. 군사기밀도 아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자료만 비밀에 붙이고 있어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요약해보면 천안함이 좌초로 인해 배 아래쪽에 손상을 입어 훼손이 되고 그 상태에서 고속기동을 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함미를 채웠다. 결국 함미 쪽의 집중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구조상 가장 취약한 부분인 중앙부가 절단되어 침몰했을 수 있다고 봤다.
- 민군합동조사단으로 참여키로 했다던데 문제가 있었다고 들었다. 그 얘길 듣고 싶다.
민주당 쪽에서 추천한 조사단으로 민군합동조사단에 참여할 예정이었는데, 토요일에 합동조사단 쪽에서 연락이 왔었다. 일요일에 조사단이 독도함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못나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렇다면 나는 못 들어간다. 업무를 주로 인터넷으로 하는데 거기 들어가면 여건이 안 될 것이고 더군다나 지난 금요일부터 중요한 자료를 분석 중이었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 그동안은 의혹만 갖고 있던 걸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하던 중인데 혹시 군 쪽에서 그걸 보고 연락을 해서 내 입을 막으려는 건 아닐까 별생각이 다 들었었다.
- 민군합동조사단 활동이 쉽진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예상하나?
지금은 정치권 차원에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국정조사를 하고 함미에 대한 증거 보존신청을 해야 한다. 민간 쪽에서 조사단 단장이 되어 지휘를 하고, 법적으로 공인된 제3의 장소에서 민간 중심의 조사단이 조사해야 한다.
군이 지휘권을 갖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는 게 답답하다. 청와대의 상황시스템은 육해공군 등 대한민국 전체가 커버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만약 청와대가 몰랐다면 군이 완벽하게 대통령을 속인 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가) 군과 함께 진실을 은폐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