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국 주식시장은 폭등했다. 그 이유는 몰락해 가던 메가뱅크들의 주가가 급등을 했기 때문이다. 시티그룹, BOA 경영진들의 잇단 블러핑이 시장을 현혹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런 블러핑을 거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쉽게 할 수 있었을까? 정치권과의 묵계가 없이는 현재 상황에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발언들이다. 과연 그들 뒤에는 누가 있을까?
그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이렇게 심각한 위기가 이렇게 쉽사리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웃기는 일이다. 시장은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메가뱅크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가 정말로 깨끗하게 해결된 듯 반응을 하고 있다.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에 부실이 발생하면 은행은 당연히 손실충당금을 적립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자기자본금을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대손상각금액은 제외하고 이익이 발생했다고 시장에 떠들어 댄 것이다. 한 마디로 손실은 제쳐두고 이익만 시장에 흘린 것이다. 그들이 무슨 배짱으로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었을까? 그들 뒤에는 버냉키가 있다.
이제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 딱 하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은 자산평가방법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즉, 자산에 대한 현재의 평가 방식 즉, 시가평가방법(mark to market)을 다른 방법으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참 간단하다. 이제 그 진실을 조금 더 들여다 보자.
버냉키는 그 유명한(악명 높은) CFR(미대외관계협의회)에서 지난 화요일 다음과 같은 멋진(?) 발언을 한다. 이 발언으로 미 은행주는 급등했으며 마치 모든 금융위기가 종식된 듯 시장을 오도했다. 버냉키는 자산의 시가평가에 관한 회계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약간은 모호하며 추상적이지만 그 속엔 짙은 음모의 냄새가 배어 있다. 가능하면 의역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얼마나 현학적이면서도 모호한 말로 세상을 속이는 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읽기에 매우 거북스러울 것이다.
“The ongoing move by those who set accounting standards toward requirements for improved disclosure and greater transparency is a positive development that deserves full support. However, determining appropriate valuation methods for illiquid or idiosyncratic assets can be very difficult, to put it mildly. Similarly, there is considerable uncertainty regarding the appropriate levels of loan loss reserves over the cycle."
“한층 개선된 공개절차와 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에 대한 회계기준을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움직임은 완벽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긍정적인 발전이다. 그러나, 비유동적이며 특이한 자산에 관한 적정한 가치평가방식을 결정하는 일은 연착륙시키기에는 매우 어려울 수가 있다. 비슷하게 사이클을 상회하는 대손충당금의 적정한 수준에 관련해서도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As a result, further review of accounting standards governing valuation and loss provisioning would be useful, and might result in modifications to the accounting rules that reduce their procyclical effects without compromising the goals of disclosure and transparency. Indeed, work is underway on these issues through the Financial Stability Forum, and the results of that work may prove useful for U.S. policymakers.“
“결론적으로 가치평가 및 손실규정을 정하는 회계기준에 대한 진전된 검토는 매우 유용할 수 있으며 공개 및 투명성에 관한 목표를 훼손시키지 않고도 경기순응적 효과를 감소시키는 회계 규칙을 수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현재의 방식인 자산에 대한 시가평가방식을 바꿔 부실을 숨겨버리면 은행은 아무런 문제없는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이다. 즉, 은행 시스템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작년 혹은 재작년의 평화로운 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식에 대한 언급은 없었으나 그 방식은 1980년대의 RAP(Regulatory Accounting Principles) 방식과 유사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RAP 방식이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손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즉, 손실을 분할해서 장부에 계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런 편법을 사용해도 몇 가지 문제가 남는다. 즉, 그러한 행위가 결코 현실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며 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금융기관들이 오늘 현재의 자산가격이 바로 실제 가격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에 있으며 그러한 행위를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그런 일을 부추긴다는 데 있다.
시장에는 아직도 적정가격이라면 이들 금융기관이 보유 중인 쓰레기 자산을 구매하고자 하는 수 많은 사람 혹은 세력이 존재한다. 벌처 펀드, 헤지 펀드, 사모펀드 등등. 그들은 값싼 부동산, 하락한 MBS 등등을 사려고 엄청난 자금을 모아놓고 대기 중이다. 그러나 판매자들은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구매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쓰레기 증권을 실제 시장가격으로 처분할 생각이 전혀 없다. 웃기는 일 아닌가? 살 사람은 있는데 망해가면서도 싸게 팔지는 않겠다니…… 그들이 믿는 것은 정부다. 정부는 치료를 택하는 대신 즉, 문제가 되고 있는 금융기관들을 국유화 또는 파산시키는 대신에 시간을 끌면서 편법을 통해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피해보려 한다는 것을 영악한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가를 이해할 수는 있다. 정치인들은 대규모 파산을 두려워한다. 물론 금융기관들의 로비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 사태 당시 했던 Regulatory Accounting Principles(RAP) 방식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1980년대 터진 저축대부조합 사태 역시 지금과 매우 비슷한 구조로 발생했다. 즉, 당시 금융기관에 대한 자기자본 비율이 완화되고 이자율 제한이 폐지되면서 저축대부조합들은 고위험, 고수익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과도한 레버리지 대출에 나섰던 이들 금융기관의 줄도산이 시작됐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RAP 기준을 새로 만들어 시행한다. RAP란 GAPP에 역행하는 회계기준으로 자산 손실을 한꺼번에 계상하는 것이 아니라 분할에서 계상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즉, 손실액 전체를 한꺼번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에 나눠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해 손실의 규모가 줄어든 것처럼 눈속임을 하도록 한 제도이다.
물론, 그러한 방식으로 장부를 조작해도 사실 혹은 진실을 은폐할 수는 없다. 웃기는 것은 RAP의 별칭이 Creative Regulatory Accounting Principles라는 것이다. 손실을 은폐하려는 데 창조적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코미디다.
최악은 그렇게 편법을 동원해 도와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죽대부조합의 파산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회계방식의 변경은 저축대부조합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촉진시켜 그들의 파산을 가속화시켰으며 결국 그 손해는 전부 미국 납세자들의 몫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야 말로 해결책이다. 금융권이 현실을 외면하면 할수록 그리고 정부가 회계기준을 변경해 그 문제를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이 불황은 그만큼 더 길어질 것이다. 불황이 깊어지면 질수록 일본이 90년대 치러야 했던 장기 불황으로 미국을 내몰 것이며 좀비 기업들은 더 많은 정부 돈을 흡수해가며 납세자들의 희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위기의 주범인 금융기관들이 이번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에 그 당시의 시가(적정가격)로 자신들의 자산을 처분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 금융기관은 그 당시에도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자신들의 부실을 숨기기에 급급해 왔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과 같은 참혹한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그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자산가격이 실제가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회계기준이 바뀌고 감독기관이 그것을 인정해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1980년대의 저축대부조합 사태 때도 1990년대의 일본에서도 실패로 끝났다. 물론 이번에도 실패로 끝날 것이며 이러한 편법은 미래에도 역시 실패로 끝날 것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한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를 편법이 아닌 상식 즉, 보편 타당한 룰을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편법은 편법을 부를 뿐이고 그러한 편법은 또 다시 언젠가는 새로운 문제를 불러오는 것이 세상의 순리이다. 오직 강자만을 위한 규칙 또 강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규칙은 이미 규칙이 아니다. IMF가 우리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제시했던 그 엄격한 회계기준이 왜 유독 미국에게만은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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