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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검은 백조 - 세일러 (09.07.31)

yygg 2009. 7. 31. 15:51

출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738365

 

 

 

검은 백조 

 

  • 세일러 09.07.31
  •  


    1. ‘라는 것 경제 지식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2. 검은 백조

    3. 맞보기, 보험, 헷지


     

     

    저의 지난 글들 중에는 검은 백조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쓴 글이 꽤 있습니다.

    제가 검은 백조라는 개념을 많이 사용했던 이유는 저 자신이 무시무시한 검은 백조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작년 9월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뒤를 이은 금융시장의 패닉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듯이 저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나라 안팎에서 여러 마리의 검은 백조가 소름끼치도록 징그러운 웃음을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틀림없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여러 가능성을 따져보고 또 따져보고...

     

    책에서만 본 이야기들, 이론으로만 가능한 이야기들이 바로 내 눈 앞에서 현실로 벌어지려 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온종일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돌덩이 같은 게 밤에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빠져버려서 솜처럼 무거운 몸을 끌고 낮에 길을 걸어갈 때면, 눈에 비치는 일상의 풍경들이 매우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며 재잘대는 아이의 모습, 다정해 보이는 노부부, 교복을 입은 학생들, 퇴근길에 동료들과 가볍게 한 잔 걸치며 웃고 떠드는 직장인들...

     

    이런 일상의 풍경들을 바라보는 제 눈에는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능성이 겹쳐져서 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시각에서 현실감을 앗아가버려 꿈길을 걷는 듯 몽롱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낮의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주변 풍경을 바라볼 때면 현기증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검은 백조의 모습은 너무 징그러워 혐오스러웠고, 또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 흉측한 날개가 하늘을 덮을 때면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을 생각하니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화도 났습니다.

    제 지인들은 술자리에서 화가 나서 울분을 토하는 제 모습에 평소에 안 그러던 사람이 왜 그러냐고 의아해하기도 했습니다(저는 술을 잘 못 합니다).

    한 두달 정도를 그렇게 보낸 듯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카페에 쓰기 시작했고 그리고 인연이 이어져서 이 곳 아고라에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제가 목격한 것을 제 주변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제가 목격한 것에 대해 저 스스로도 좀 더 자료를 찾아보고 거듭 확인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길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글쓰기 경험을 통해서 저 개인적으로는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달아주시는 댓글에 힘을 얻어 글을 써나가기도 했고, 또 댓글들을 통하여 많은 통찰의 계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글을 써나가고 피드백을 주시는 것에 따라 많이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저 스스로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또 한 가지, 이런 과정을 통해 저 스스로 한 가지 해답 아닌 해답과 마주하고서 최소한 마음의 평정은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 거듭 감사드리고 또 답글을 쓰지 못하는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얻었는데, 주변 상황을 돌아보면 암울하기만 합니다.

     

    제가 이 글, ‘검은 백조를 지금 쓰는 이유는, 에코 버블 덕분에 시장 심리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비관적인 생각을 토로하는 이 글을 쓴다면, 지금처럼 안정되어 있을 때 쓰는 것이 맞겠다 싶어 지금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현 상황을 공황이라고 규정할 때,

    생존을 목표로 하자고 말씀드릴 때,

    보험의 논리로 생각해보자고 말씀드릴 때

    절대 가벼운 기분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님을 전달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 앞으로 닥쳐올(사실 이미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성격을 대공황이라고 규정했을 때 결코 대공황의 의미를 가볍게 생각하고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그 느낌을 어떻게든 정확히 전달해드리고 싶은데, 글이라는 표현수단이 갖는 한계가 큰 듯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제 솔직한 느낌을 다소 걸러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 말씀드려 보는 것입니다.

     

    대공황 당시 주식은 89.2% 하락했고, 부동산은 85% 하락했으며, 실업률은 최고 28%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 동안에 일반 서민들이 치러내야 했을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서 가볍게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는 30년대 대공황을 거치고 나서 미국에 황금시대가 도래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공황을 거치고 나서 살만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런 세상이 오기까지 치러내야 하는 고통은 너무도 클 것입니다.

     

    대공황 당시 주식시장은 3년만에 바닥을 찍고 반등했지만 경기침체는 그 뒤로도 계속 됐습니다.

    공황을 초래한 것은 일반서민들이 잘못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데 공황이 닥치면 일반서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해야 합니다. 결국 일반서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제주도의 올레길을 소개하는 프로를 우연히 봤습니다. 알게 모르게 벌써 많은 올레꾼들(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더군요)이 제주도의 올레길을 무작정 걷기 위해 찾고 있더군요. 길이 참 걷기 좋아 보이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더불어 걷기에 좋아 보여서 나중에 저도 한 번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프로에서 올레길을 걷는 한 젊은이를 인터뷰한 대화가 인상 깊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비정규직이더군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사는데도 돈은 안 모이고, 미래의 어떤 희망도 보기가 힘든 듯 했습니다.

    그 젊은이가 하는 말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은 자부할 수 있는데, 주변에서는 자기를 보고 그런답니다, 열심히만 살면 뭐하냐, 잘 살아야지...

    그 젊은이는 요즘에는 스스로 회의가 든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인가, 열심히만 살면 안되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 젊은이를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자기 스스로 믿고 살아온 기준 자체에 대해 회의해야 할 때 사람은 가장 힘들어집니다.

    올레길을 걷고 싶어 찾아온 그 젊은이에게 얘기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니다, 세상이 광기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이제 바로 잡힐 것이다.

     

    올바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조롱당하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황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

    도저히 바로 잡히지 않으면 안될 때가 돼서 공황이 닥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기가 바로 잡히고 살만한 세상이 올 때까지 그 과정은 너무 길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 젊은이에게 꼭 견뎌내고 살아남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든 견뎌내기만 하면 올바른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회의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부디 우리 모두 다같이 견뎌내야 합니다.

     

    제가 생존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씀드릴 때, ‘보험의 논리로 생각하자고 말씀드릴 때 결코 가벼운 기분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보험의 논리에 대한 글을 올려야겠다 싶었습니다. 그 글을 올리는 참에 이 글의 내용도 같이 올려야겠다 싶어서 써봤습니다만, 뭐랄까...

    게시판에 올리기에는 좀 부적절한 느낌도 들어서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쓴 글이라 그냥 올립니다.

     

     


    * 오늘은 세 편의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이 글은 두번째 글입니다.


    출처 : 경제, 경제현실, 그리고 경제학
    글쓴이 : 시나브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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