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주장/정치 사회

[스크랩] 박정희`의 부정축재 (2)

yygg 2011. 2. 22. 00:17

[기획시리즈7-폭로] '빨갱이 박정희'의 부정축재 (2)

 

 

박정희가 1남2녀의 자손을 위해 남긴 공식적인 재산은

대통령이 되기 전 살았던 서울신당동 집 한채 뿐이었다.

'부정축재'로 모은 그 많은 재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건 완전히 내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박정희와 그의 정권이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며 모은 막대한 재물은

거의 모두가 '통치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즉,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자기들의 군사정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대상들에게

 막대한 금액들을 뿌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대상'이란 우리가 생각수 있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신민당)측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비단 정치권뿐만 아니라  

각 국가조직 및 대한반공연맹과 재향군인회등 각종 사회단체등  

비정치권 조직까지 포함되포괄적 개념이다. 

 

        (참고자료: 위키피아 삼선개헌 10월 유신 )

<보수단체  국립현충원서 " 김대중 묘 파고 우리가 묻히겠다." 난동>

http://v.daum.net/link/4156932

  

우리는 지금 '박정희 정권'을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돈으로서 유지하는

'매수(買收)정권'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 부분은 현재의 MB정권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박정희'는 개인적인 '축재'에 있어 정말 청렴하였을까?  

'박정희'는 '10월유신'을 통해 종신집권의 기틀을 세워 놓았으나 

 이와는 별도로  '10월 유신'전에 이미 권좌에서 

내려왔을 경우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바로 '5.16 장학재단' (現'정수장학회)이다.

 

이  바로 '5.16 장학재단' (現'정수장학회)은 

현재 박근혜가 실질적 소유주로 있는 재단이며

이에 대해 세간에 끊임없이 많은 의혹을 일으키고 있으며,

 

박근혜와는 분리시킬 수 없는 사안이지만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회차에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박정희의 부정축재 재물'이 박근혜에게 넘어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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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공개되있다시피 박근혜의 재산은

09년 3월 재산변동사항신고시 지난 해보다 1억여원이 증가한 23억원을 신고했다.

 

▲ 박근혜 18대 국회의원 예비후보 당시의 재산보유현황서.


 

박근혜는 단 한번도 '취업'이나 '영리사업'을 운영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러한 사람이 일반서민에게는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있는

 금액인 23억원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 진위를 검증하기 어려운 '자진신고 내역' 만으로 말이다.

그것이 전부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재산을 보유하게 되었을까?

 

 

아버지 '박정희'가 대통령이었기에 에 청와대에서 살던

박지만·박근혜·박서영 3남매는 10.26 사태로 청와대를 나와야 했다.

 

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은 바로 그 다음날,

'살인마 전두환'은 박근혜의 입회아래 

청와대금고를 열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있는 사실이다.

이 부분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정황을 들여다 보자 

  

 

이 부분 또한

전두환의 독불장군식 전횡을 읽을 수 있는 또하나의 스토리이지만

우리는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이 하나있다. 

 

'살인마 전두환'이  '계엄합동수사본부장'이

었긴 하나 엄연하게 위계질서

(육참총장/국방부장관/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을 승계하는 국무총리 등)

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승낙과 협의없이 청와대의 금고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였다는 것과 

발견된 돈을  육참총장 및 국방부장관 등  상위자에게 분배하였다는 점이다.

 

이 내용은  당시의 부패한 권력조직 내부의 체계를 일부 부여주고 있음과 더불어 

차후의 12·12 나 5·18 같은 사건이

어떠한 구조와 배경에서 이루어졌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때  '군 세력'과 '청와대 조직'의 주축에

'하나회'로 조직된 핵심세력들이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행동 들이었으며 

그로인해  후일  '전두환의 5공'에서부터 '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재앙이  이미  잉태되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각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국가조직의 혼탁과 부패는 바로 국민들에게 '재앙'이 된다는 것

똑바로 그리고 확실하게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박정희 통치 비자금' 들어 있던 금고는

 <금고1>과 <금고2>가 있었는데 

위에 나온 내용은

<금고2>에 대한 처리과정이 기술되어 있는 것이며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가 사망하고서 그의 양복주머니에 있던

<금고 1>의 열쇠는 박근혜에게 전달되었으며,

<금고 1>의 개봉과 처리는 박근혜 단독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과거 김계원 비서실장의 증언에 의하면

박대통령은 생전에 <금고 1>에서  돈을 덜어내어 <금고 2>로 옮겨넣고 

주로 <금고 2>의 돈을 꺼내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상식적으로도 <금고 1>의 내용물은 <금고 2>에 들어있던 

현금 9억5천만원보다 훨씬 큰 금액이 들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당연하다.

 

이와 관련하여 당사자인 박근혜는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유추 할 수있는 단초는 있다.

 세간에 알려진 '박정희 비자금 60억불설' 이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와  비자금

 

통치 18년중  '박정희'정권의 비자금은

크게 두 갈래 대목으로 나누어진다.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후 72년 10월 유신까지가 그 하나고

나머지가 10.26까지 부분이다.

 

세인의 눈을 피해가며 공화당을 만들기 위해

김종필 그룹의 4대의혹 사건은

(증권파동,워커힐 호텔,새나라 자동차,빠찡고)

제쳐 놓더라도

 

유신전까지 박정권이 만들어냈던

권력형 정치자금에는 의혹과 부정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각각 세차례씩의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과 격렬한 전투를 치러내기 위해

박정희정권은 자금을 긁어 모으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치자금은 통치의 불가피한 비용" 이라는 철학을 세웠던 박정희 대통령은

효과적인 조달 방법으로 <4인협의회> 라는 것을 운영했다.

 

이후락비서실장, 김형욱정보부장, 김성곤공화당재정위원장,장기영 부총리등

막강 4인이 호텔 밀실에 모여앉아 기업을 상대로

'정부 이권장사'를 요리했다는 것이다.

돈에 목말라했던 기업에 달러차관이나 은행대출을주면서

 3% 에서 10%까지 리베이트(일종의 사례금)를 뗐고,

정부 발주공사에서도 일정 비율을거두는 식이었다.

 

국내자본이 빈약했던 시절이라 돈이 급하기도 했거니와

달러 차관은 국내금리보다 엄청나게 싸 기업들은

어떡해서든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으려고

 4인협의회(이후락,김형욱,김성곤,장기영)의 눈치보기에 바빴다.


박정희 정치자금 관련 기업인 증언

정기적인 모금은 추석과 연말두 차례 있지요.

대재벌등 A급기업은 연간 5억~6억원낸 걸로알아요.

유신초기엔 2억∼3억원 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플레도 있고 해서 차츰차츰 늘어난 거죠. 

 

작은 곳은 2천만∼5천만원도 내고요.

그래서 합쳐보면 연간 총액이 초기엔 20억 나중엔 50억~60억정도 였어요.

같은 기업이라도 액수를 못박아둔게 아니고

실적 좋으면 조금 많이 냈다가 형편이 안 좋으면 좀 줄이고, 뭐 그런 식이었죠.

 

그런데도 기업한테는 액수가 스트레스였는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어느 그룹의 총수가 그때 경영실적이 별로 안 좋았는데도

회사규모가 크다고 무리해서 상당액을 총수 개인의 당좌수표로 냈어요.

 

그런데 구좌에 잔금이 모자라 은행지급이 안되더라고요.

부도에 몰릴 판이었죠. 그래서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께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돌려주라」고 하더라고요.

 

76년도 한달 신문 구독료 600원일때 일이다. 

지금 신문 구독료가 월 만2천원인 점을 비교해 볼때 딱 20배가 올랐다.

 대충 당시 돈의 시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

박정희정권은 연간 50억~60억을 정치자금으로 받아 챙겼다.

지금시세로 보면 1천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박정희는 김대중과 맞붙었던 71년 대선에서 당시

1년 국가예산의 10%가 넘는 600억~700억의 돈을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6백억 김종필 증언,7백억 강창성 증언)

지금 시세로 보면 수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다.

 

 결론적으로 박정희는 이런 엄청난 금액의 비자금을 기업들에게 뜯어다가

자신의 세력확장과 유지를 위해서 쓴 것이다.

 

전두환이 비자금 문제로 국민들에게 큰 비난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그 원조는 박정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실상이 전두환 만큼 국민들에게 낱낱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데도 박정희가 청렴하고 깨끗했다고 이야기한다. 

정확한 사실을 모르니까 자꾸 그런 주장을 하고,

또한 그런 주장에 귀가 솔깃해 지는 것이다.

 

전두환이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기업들에게 천문학적 비자금을 뜯어내고

고문,용공조작,인권탄압하고 보도지침 내려보내면서

언론을 탄압했는데 이 모든것의 원조가 박정희다. 

 

전두환은 박정희가 키운 정치군인으로서

박정희가 어떻게 이런 독재를 하며 권력을 유지하는지 그대로 보고 배워서 따라한 것이다.

또한 지금의 MB정권 또한 '박정희'를 추앙하는 정권이다


  

전두환이 12.12 사태로 불법집권에 성공하자마자 

일본에 60억불 차관요청하게 되는데

 

세간에 알려진 박정희의 부정축재금과 액수가 똑같으며

겉으로는 권익현이 특사로 파견됐고

 일본정부가 당시 40억불 차관으로 결정하였으나,

 

실제거래는  박정희가 스승처럼 따랐던 일본장교상관 세지마 류조와 

박정희 생전에 소개를 받았던 전두환 사이의

비밀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지마류조는 박정희 일본장교 선배이며 일본정계의 실력자로서 

박정희 부정축재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일본정부와 기업에 대한 뇌물 전달창구로 활약하였다. 


또 김종필과 박근혜가 일본에가서  일본이나 국내은행중

정확한 출자자도 없으면서 50억불자산규모의 일본주도 한국합작인

아시아은행 설립을 주장했는데, 박정희 축재금 60억불과 규모가 비슷하며, 

일본차관으로 둔갑해 역수입되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여하튼 <금고 1>안의 내용물과 그 처리에 대하여 아직은 역사속의 베일안에 있음이다

 

 2007년 2월 박근혜가 한나라당 대표시절 전두환 댁을 방문했을 때의 보도사진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18970&section=sc1

 

 박근혜는 2001년 12월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전두환을

 "세세한 부분에서는 잘못할 수도 있지만,

그 자리에 앉아 고뇌한 부분은 평가해줘야 한다.

어렵고 혼란의 시기에 나라를 잘 이끌려고 노력한 분"이라고 호평했다 CVR 


 

  

마무리하면....

 

윗글의 기사내용은 박정희 사후에

청와대에서 박정희비자금이 담겨있던 비밀금고 2개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하나에서만 9억5천만원 돈다발이 발견되었고,

이중 6억원이 박근혜에게 전달되었으며

 

다른 하나의 금고에 있던 내용물은 전부 박근혜가 챙겼는데,

 거기엔 얼마의 비자금이 들어 있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위 기사들의 주된 내용이다.

 

   



결국  6억+알파의 돈이 박근혜에게 건네졌다는 말인데

당시 서울의 아파트 한채값 3천만원수준이었으니

아파트 수십채를 살수있는 액수의 비자금을 물려 받았던 것이다 .

 
이 돈은 당시 강남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으며  현재가치로는  450억원쯤 된다,

환률도 그 때는 1달러에 650원이었는데 지금은 1250원이고

지금 300만원은 받을  군생활 18년차의 육군대령 당시월 급이 18만원이었다.

 

그리고선...30여년이 흐른 지금  박근혜는 자신의 재산이 '총 23억원'이라고 한다.

전두환은 '총재산은 29만원뿐...'이라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재벌을 협박하고 회유해서 불법비자금을 모아

금고에 쌓아놓은 사실을 모르던 순진한 국민은

 

부모를 잃은 3남매가 불쌍하다며 자식들에게 다 주어야 한다,

전두환과 나눠가져야 한다 아니다,

국고로 환수해야한다는 등 의견이 엇갈렸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정말 착한 '천사'들인지...'등신'들인지 구별이 안된다. 

  

박정희는 증거가 드러난 것만 해도 실로 천문학적인 정치비자금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조성하여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했으며 일부는 자식들에게 건네졌

 

 현금이 아닌 무형재산의 형태로 사유재산을 만들고

자식들이 그 덕을 보게하였는데 바로

영남학원,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등이다.

 

박정희가 청렴하였다는 평가는

오늘날의 법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옳은 말이 아니다.

당시의 가치관으로 보아서도 범죄행위였지만

박정희가 왕처럼 나라를 다스렸기에 아무도 잘못이라고 말을 못했을 뿐이다.

박정희는 왕이었으므로 돈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다음 회차에는 이 영남학원,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를 들여다 보기로 한다

 

【참고자료】 

[한겨레]    1995-11-08 07면 2290자 정치·해설 컬럼,논단 

[경향신문] 2007-07-19 박근혜 “전두환 6억원 주기에 생활비로 받았다” 
[월간조선]1990년 3월 '월간조선' 10.26 사건 때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금고

[플러스코리아] 2007-2-8 '박근혜와 전두환의 만남'  

[인터넷 블러거]의  글 등

 

 

http://cafe.daum.net/dbs1966/JlGv/857?docid=10Ibe|JlGv|857|20090921115624&q=MB%B0%C5%C1%FE%B8%BB+%BD%C3%B8%AE%C1%EE&srchid=CCB10Ibe|JlGv|857|20090921115624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삼족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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