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영화

(영화) 위대한 유산

yygg 2009. 2. 1. 16:55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위대한 유산'

 

줄거리 :  플로리다 걸프 해안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핀 벨(8)은 누나와 가난하게 살지만 화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어느 날 그는 탈옥한 죄수 루스티그를 우연히 만나 그의 발목에 찬 족쇄를 풀어주면서, 그의 단순하고 평화로운 생활이 깨어짐을 느낀다. 러스티그는 곧 잡히고 만다.

인근에서 가장 부자로 소문나 있는 노라 딘스무어 여사로부터 갑작스런 초대를 받게 된 핀은 그녀의 은둔자적인 비밀스런 삶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녀의 조카인 에스텔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사랑으로 매일 그녀를 찾는다.

에스텔라는 그런 핀에게 상류사회 특유의 냉정함과 오만함으로 일관하지만, 핀이 그녀를 그린 그림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에스텔라를 사랑한다면 그의 마음만 아플 거라는 노라의 충고에도, 어느 새 커버린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억누를 수 없다. 노라의 말대로 에스텔라는 홀연히 파리로 떠나버리고 절망에 빠져 헤매던 핀은 그림그리기를 포기한 채 어부로서의 나날을 7년간 보낸다.

갑작스런 익명의 후원자 덕분에 뉴욕에 보내진 그는 화가로서의 꿈을 이루며 뉴욕 미술계의 유망주로 떠오른다. 부와 지위, 명성을 한꺼번에 얻게 된 핀은 에스텔라와의 갑작스런 재회에 행복해한다. 그리고 왜 딘스무어 여사가 자기를 위해서 막대한 후원을 해 주었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한마디 말로 그에게 또한번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전시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전시회에 찾아온 자형 죠를 박대하다시피하여 떠나 보낸다. 전시회 그날 밤 에스텔라에게 자랑스레 찾아가지만, 에스텔라는 신혼여행을 떠나 뉴욕의 집에 없고,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차 뉴욕에 온 딘스무어 여사만 집에 있다. 딘스무어 여사는 결코 에스텔라를 핀과 결혼시킬 의도가 없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괴로워하는 핀 앞에 갑자기 나타난 루스티그가 나타난다. 러스티그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핀을 찾아온 것이다. '위그노가 일을 잘 처리했군.' 핀은 혼란스러웠다. 범죄자이자 조직폭력배인 러스티그는 자신이 탈옥했을 때 자기를 도와 준 순수한 소년 핀을 잊지 못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핀을 후원해 준 것이다. "너는 나에게 유일하게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대해주었던 사람이었어." 러스티그는 핀을 만나러 온 것이 거의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다른 조폭들이 그를 미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핀은 러스티그를 지하철로 안내하나 거기서 다시 만난 조폭에 의해 러스티그는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성공한 핀은 옛 추억을 되살리려 딘스무어 여사의 저택을 다시 찾는다. 거기서 소녀 에스텔라를 발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멕시코 만이 바라다 보이는 마당이자 부두. 거기에 에스텔라가 있다. 에스텔라는 "요즘 들어 널 더 많이 생각했었어." 핀은 "넌 내 마음 잘 알잖아." 둘은 손을 잡는다.

 

 

상류 사회에 대한 동경과 밑바닥 고향에 대한 부끄러움

피네건 벨은 밑바닥 인생이다. 잘 생기고 그림을 잘 그리는 녀석이긴 하였으나 가난하고 미천한 출신일 뿐이다. 부모도 없이 누나의 남자친구 죠가 그를 양육한다. (더군다나 누나는 후일 죠를 떠나버린다.) 죠는 가난한 어부이고, 누나는 그런 죠의 동거녀일 뿐이고 핀은 그런 누나의 남동생일 뿐이다. 생활은 꾀죄죄하고 가난하다. 기껏해야 어부나 될 팔자이다.

 

조가 딘스무어 여사의 집에 방문했을 때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퇴락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저택이다. 각종 조각상이 있고, 분수가 있고, 아치가 있고, 카페트가 깔려 있는 집이다. 사람 없이 쓸쓸한 외롭고도 품격 있는 집이다. 거기에 아름다운 소녀 에스텔라. 핀이 딘스무어의 대저택과 에스텔라를 동경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낙원이자 천국이다.

 

낙원에 대한 동경은 그로 하여금 고향을 배신하게 만든다. 정체 불명의 후원자가 핀에게 뉴욕에서 그림을 그릴 기회를 주었을 때, 그는 죠를 배반한다. 죠는 그를 키워준 자형이다. 그리고 뉴욕으로 오기 전까지 함께 어부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뉴욕 사람들에게 죠를 그린 그림에서 죠는 마약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뉴욕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죠가 전시회 당일 나타났을 때 핀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죽은 사람이라고 했던 그림 속의 주인공이 살아 있으니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플로리다 시골 사람이 고상한 사람들의 전시회장에 와서 마구 떠들어대니 창피하고, 더구나 자신의 기분대로 마구 떠들어대는 시골스러운 어법, 종업원이 나르는 물잔을 깨뜨리고 그것을 주워 나르는 세련되지 못한 행동, 그것이 핀의 언성을 높아지게 만든다. 시골 사람은 언성을 높게 만든다. 죠는 상황을 알아차리고 전시회장을 나간다. 나가면서도 핀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상류 사회의 배신과 밑바닥의 후원 

 

핀은 딘스무어 여사가 그를 도왔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딘스무어 여사는 핀을 돕지 않았다. 도리어 그가 뉴욕에서 그녀를 만난 날, 그녀는 그에게 '학습용 쥐'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시골에서 사는 에스텔라의 놀잇감, 남자를 요리하기 위한 방법을 익히는 도구. 그것으로 족했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핀이 뉴욕에서 미술로 성공하는 바람에, 에스텔라의 결혼에 대한 흥행사가 되었다. 에스텔라를 두고 이리저리 망설이던 변호사 남자친구를 핀이 압박하여 에스텔라에 대한 청혼을 이끌어낸 것이다. 에스텔라가 시골 친구 핀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핀이 에스텔라의 젖가슴이 드러나는 나체 그림을 그리고, 식당에서 핀과 나간 에스텔라가 연락이 끊겼다. 남자친구는 무얼 생각하겠는가? 당연히 에스텔라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두고 있고, 결혼 상대자가 다른 남자에게 알몸을 보여준 것이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상태에서 자기를 떠난 에스텔라가 핀과 육체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질투심을 유발하여 에스텔라에게 청혼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걸 지렛대 효과라고 한다. 핀은 에스텔라의 지렛대가 되어 주었다. 에스텔라는 핀을 자신의 결혼의 지렛대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미안함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인데, 당연히 미안해하여야 한다.

 

오히려 핀을 성장하게 한 것은 밑바닥이었다. 그의 고향의 바다, 누나의 남자친구, 그리고 의외의 인물 러스티그. 러스티그는 우리 식으로 하면 조직폭력배이다. 마피아. 그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돈을 벌며 그들 속에서 은원의 관계를 맺는다. 마피아들은 가난하기 마련이지만 설령 그들이 돈을 가졌다 해도 그 돈은 더러운 돈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핀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출세의 기회를 수용하게 만든 것이다. 묻고 따졌다면 핀은 그 돈을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핀은 자신의 출세가 낙원의 세계에 속하는 딘스무어 여사가 보내 준 돈인 줄 알았지만, 결국 '더러운' 탈옥수가 보낸 돈이었다.

 

핀의 순수성과 재능을 알아주고 신뢰했던 이는 딘스무어도 에스텔라도 아니었고 죠이자 러스티그였다. 상류사회는 인간의 순수함을 믿지 않는다. 그의 효용가치를 믿을 뿐. 그런 상류사회에서는 자기 스스로 파멸한다. 그러나 그 파멸의 궤도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유혹과 늙음

 

에스텔라는 과연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러나 시간의 구속을 받는 사람이다. 천사와도 같이 아름다운 소녀 시절의 에스텔라, 어른이 되어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그녀의 피부는 부식되고 있다. 그녀의 고모? 딘스무어의 피부 주름을 부각하여 비추는 것도 그런 의도일 것이다. 에스텔라는 돌이켜 보면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기를 기다리기만 하였을 뿐, 남자가 다가와서 어찌해 주기만을 바랐을 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유혹뿐이다. 오직 자기 한 사람을 우상으로 섬겨왔던 한 남자. 그에게 긴 여행을 가게 한 다음 그를 수용한다. 세상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에스텔라 역시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였고 결국 자신의 추종자를 맞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된 것은 그의 늙음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스텔라가 젊었다면, 에스텔라의 딸이 그리 크지 않았다면, 자신이 막다른 곳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딘스무어 여사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면, 에스텔라는 다시 한번 핀을 거절하였을 것이다.

 

시간, 늙음, 죽음. 이것은 사람을 관대하게 하는 것인데, 평생 살인과 사기로 살아왔을 러스티그가 플로리다의 소년에게 은인이 되기로 결심한 이유가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러스티그 자신은 가족도 없고 죽어갈 몸이라는 것을 자각하였을 것이다. 그때 진실이 보이는 것이다. 진정 살려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