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
줄거리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는 프로젝트를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다.
상우는 녹음 전문가, 은수는 강릉 방송국 PD.
상우는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니 얼마 후부터 은수를 좋아하게 된다.
절에도, 강원도의 농촌 마을에도 둘은 함께 다니며 소리 채집을 한다.
대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 구슬프게 입을 모아 부르는 강원도 아리랑 소리,
동강 쯤 되는 냇물 소리, 절 간의 풍경 소리.
방송국에서 둘은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신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상우씨는 식구 있어요?"
"예, 은수씨는요?"
"좋겠다. 신경써 줄 사람도 있고. 저는 그런 사람도 없어요."
아마 상우의 귀가 번쩍 뜨이었을 것이다.
"결혼은 안 해요?"
"저요? 한 번 했었죠."
은수는 그러니까 이혼한 여자이고, 아기가 없으며, 혼자 살고 있는 여자이다.
그러는 상우는 아버지도 홀아비이고, 고모도 가만히 보니까 과부이고,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셔서 돌아가신 할아버지만 그리며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손자이다. 결혼 안 할 거냐고 식구들이 성화를 부리면 그냥 빙긋 웃고 마는 남자이다.
둘의 속마음이야 어떠했건 간에,
어느 날 밤 작업을 마치고 오면서,
은수는 자기를 바래다 주는 상우에게 제안을 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라면을 먹다가
"자고 갈래요?"하고 말이다.
상우는 빙긋 웃기만 한다.
그런데 결국 같은 집에 잔다.
새벽에 열에 들뜬 상우가 은수가 자고 있는 얼굴을 바라본다.
은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쩌면 그 자신도 열에 들떠서 상우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은 방긋 뜬다.
가벼운 키스를 하고 몸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은수는 가볍게 제지한다.
"우리 좀더 친해지면 해요."
고수(高手)이다.
아파트 밖을 나서면서 상우가 "아이 쪽팔려" 하고 자신의 성급함을 후회하고
어차피 다음 날 둘은 관계를 하는데,
이걸 보면 은수가 흐름의 주도권을 쥘 줄 알고 하는 조치인 것이다.
서울과 강릉,
서울로 잠시 돌아와서도 상우는 은수를 잊지 못하고,
은수는 상우를 잊지 못해 전화를 하고 상우는 한 없이 행복해 한다.
다시 공동 작업을 하면서 은수와 상우는 같은 아파트에 기거를 한다.
호칭은 상우씨와 은수씨인데, 서로 반말을 쓴다.
방송국 앞에서 은수를 차에서 내려 주는데,
방송국 동료들이 이 광경을 보았다.
"누구야. 애인이야?"
"아니, 아는 동생"
물론 이 말을 상우는 듣지 못한다.
나중에 은수가 말하지만, 공동 작업하면서 이렇게 가깝게 지내는 거 알면 회사에서 '짤린다'고 상우를 겁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의 인물이 등장한다.
방송국에서 같은 프로를 진행하는 한 남자가 뾰로퉁해 있다.
썬글라스를 끼고 공동 진행자 은수를 기다리고 있다고,
썬글라스를 잠시 벗어 은수에게 불만에 가득찬 눈빛을 보인다.
물론 은수는 이 남자에게 상우에 관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남자는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은수가 왜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지 '삐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남자는 총각이 아니라 기혼남이었을 수도 있다.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직장에서 예쁜 여직원을 찜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상우는 은수와의 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고 싶어한다.
"은수씨 김치 담글 줄 알아?"
"응 담글 줄 알지, 내가 못 담글 것 같아?"
"아버지가 사귀는 사람 있으면 한 번 데리고 오래"
"상우씨, 사실은 나 김치 못 담가."
겉으로 말은 안 하지만, 은수는 냉랭해진다.
그날 저녁 방송국에서 우울해하는 은수에게 썬글라스맨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제안한다.
은수는 술에 잔뜩 취해 아파트로 새벽 늦게 돌아오고,
상우는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느냐며 은수를 자리에 눕힌다.
다음 날 아침 상우는 북어국을 끓여 놓고 은수를 깨운다.
상우는 낮게 깔리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은수를 깨워 식사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은수는 "깨우지 말라는 데 왜 그러는 거야"하고 언성을 높인다.
무안해진 상우는 혼자 북어국에 식사를 한다.
상우의 차 안에서 은수는 묘한 질문을 한다.
"우리가 언제 끝나지?" "뭐가?"
"작업이 언제 끝나냐고", "뭐가 끝난다는 거야"
상우는 은수와 이때껏 해보지 못한 언쟁을 하게 된다.
모든 게 상우의 잘못이다.
감히 상우 녀석이, 은수가 요구하는 경계 수역을 침범한 것이다.
은수는 상우에게 한 달 간 헤어져 있을 것을 요구한다.
상우는 그렇게 요구하면 그렇게 할 사람이다.
하지만 상우는 서울로 추방된 다음에도 계속 핸드폰만 쳐다 보고 있다.
상우가 그러다가 강릉을 찾아 갔다.
은수의 집 앞에서 은수가 썬글라스맨과 승용차를 같이 타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은수의 무서운 응징이다.
사랑만 하자고 했지, 누가 결혼하자고 했느냐고,
네가 나에게 결혼하자고 요구한 댓가가 바로 이것이라는 듯이 지나간다.
다음 날 상우는 은수를 집 앞에서 기다렸다.
은수에게 차로 방송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하지만 은수는 이제 막 임시 번호판을 단 자기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비참한 상우다. 상우에게서 운전을 배운 은수는 그나마 상우의 할 수 있는 역할조차 주지 않았다. 빼앗아 갔다.
상우는 은수를 뒤따라 갔다.
전에 없던 스토커 노릇까지 하게 되는 셈이다.
가서 보지 못할 '꼴'을 보게 된다.
(느끼한) 썬글라스 맨과 어깨동무를 하고 은수는 콘도의 방에 들어간다.
홧김에 은수의 차에 상우는 열쇠로 흠을 그어 놓는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 온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상우는 남진의 노래를 부르며 우울해 한다.
사랑의 기쁨을 짧고 헤어짐의 고통은 길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사랑한 내 사랑을 ~ 안~ 녕"
치매에 걸린 할머니도 상우의 기나긴 고통을 알아 차리셨나 보다.
"상우야, 여자하고 버스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그냥 할머니의 말씀이 아니라,
바람피우다가 자신의 속을 썩인 할아버지만 내내 그리워하다 늙으신 할머니의 말씀이다.
사랑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할머니의 말씀이다.
할머니는 어느날 연분홍 치마를 곱게 입고 집을 나가시고, 살아서 돌아 오지 못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냥 돌아가지 않으시고, 상우의 병을 치료하고 돌아가셨다. 남자에게건 여자에게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분리된다는 건 그만큼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짧은 기쁨과 긴 고통 다음에 상우는 평정을 맞이했다.
상우는 이 평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다.
은수는 방송국에서 자신의 생활을 잘 하고 있다.
어느 날 은수는 자신의 행동에서 상우의 흔적을 발견하고, 상우에게 전화를 한다. 은수는 자기가 전화를 하면 상우가 나오리라는 것을 잘 안다.
함께 차를 마시고, 헤어지면서 은수가 상우에게 제안을 한다.
"우리 같이 있을까?"
한 번 혼났으면 이제 허튼 짓 안 하겠지?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면 응하라는 것일 것이다.
아마 나 같이 마음 약한 남자였으면 "그래도 될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상우는 "(서울로) 갈께"라고 말한다.
무안해진 은수가 그냥 물러설 리 없다.
가는 상우를 붙잡고 악수를 청하더니 먼저 등을 보이고 간다.
굳이 상우가 아니어도 은수는 다른 남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은수 같은 여자가 상우에게 다시 오는 기회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우는 은수를 붙잡지 않는다.
상우가 은수와 인연을 맺은 젊은 날이 짧은 기쁨과 긴 고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는 그런 청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만큼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대식 사랑
차와 핸드폰이 없으면 요즘 연애하기도 힘들다고 하더니, 은수가 만나는 두 명의 남자는 모두 차를 가지고 있다.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여자.
남자들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여자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어차피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결혼하게 되는 것일 거라고 말이다. 상우는 그런데 그런 한 번도 은수에게서 그런 생각을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자상한 남자이기 때문에 은수에게 그런 부담가는 질문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은수가 이혼을 하면서 남자에 대해서, 또는 결혼 제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들어봄 직도 했으련만, 상우는 은수에게 그런 걸 물어보지 못했다. 물론 상우가 물어보았다고 하더라도, "별 생각이 없다"는 말만 들었을 것이다. 은수가 자신의 가치관이나 속내를 상우에게 알려 주어서 무엇하겠는가? 솔직해서 별로 득 볼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우는 은수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 이유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가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남자들은 그 말뜻이 무슨 뜻인지 어서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사랑만 할 뿐이고, 사랑 이상을 요구하면 추방된다는 뜻이다.
▶ 아름다워서 복잡한 사람
상우가 은수를 잊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은수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은수는 연애 시장에서 가장 상품 가치가 높은 '미모'를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상우는 무엇을 가졌는가? 그는 순수하고 자상하다. 하지만 연애 시장이 남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돈'이다. 상우의 집안은 넉넉지 않으며, 경제적 사회적 가치가 썬글라스 맨에게 뒤진다. 그래서 은수와 상우가 헤어져도 은수는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상우는 많이 기다려야 한다. 상우는 아름다움이 주는 고통을 알지 못하였다.
▶사랑만으로 행복한 인생
아마 은수가 바랬던 인생은 이런 것일 것이다. 그는 결혼이 싫다. 결혼해서 시어머니가 하던 식구들 뒤치다꺼리를 물려받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굳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도 싫다. 젊은 날 아름다움이 있을 때, 사랑이 느껴지는 남자와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요즘에는 남자들 중에도 많다. 어떤 남자는 결혼은 해 놓고, 밖에서 자유 연애를 하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직장에 애인 한 사람 숨겨 놓고, 생을 즐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사람들은 '벌 받아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부인 모르게 밖에서는 소리를 높인다. "사람이 어떻게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가 있느냐고." 상우는 좋은 남자이고, 은수가 나쁜 여자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상우가 불쌍한 남자라고 말할 수는 있다. 상우는 사람을 잘못 고른 것이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랑이 더 우세할른지는 모르겠다. 사람들 중에는 은수같은 사람이 있고, 상우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는 분명 은수 같은 사람이 있다. 남자건 여자건 상우 같은 사람은 은수 같은 사람을 함부로 사랑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삶의 방식이 다른 별종의 사람들이다.
***
잘 빌려 보지 않는 비디오를 오늘 빌려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인상적이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 것이다.
또 15세 관람가의 영화이니 카페에 올려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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